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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 위의 인생 ] - 선 굵은 연기! 한 중 곤

 

“선 굵은 연기! 한 중 곤”

한중곤의 연극인생은 1958년 광주에서 태어나 1978년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 됐다. 이후 극단 시민에서 <임금님 안경은 누가 벗길 것인가>를 시작으로 극단 Y, 예후, 광주시립극단 등에서 활동을 했으며, 광주연극협회 사무국장과 1990년에는 극단 코스모스를 창단하고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또한 1993년부터 1996년까지 러시아 국립 슈우킨 연극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기 실기 석사 및 교수자격을 취득하고 서울, 경기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청주대, 숭실대, 서울예술대, 백제예술대, 동신대에서 후학을 양성했으며 서울공연예술전문대 연극영화과 전임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또 경기도립극단에서 무대감독으로 재직하는 등 40여년의 세월을 연극에만 매진한 중견배우이다.

2남1녀 중 장남인 그는 역장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광주교대부속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 초등학교 내내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를 못하고 늘 떠다니는 부표처럼 방랑의 삶을 살아온 건 그런 트라우마 때문은 아닌지, 언젠가 넌지시 물어보았지만 그저 웃기만 한다.

어째든 내성적인 어린 시절 성격과는 달리, 부모와 함께 살기 시작한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특히 야구부가 있던 광주동신고등학교 시절은) 3년 내내 응원단장을 할 정도로 쾌활한 성격으로 변해 있었다. 그런 그가 연극과에 간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끼를 발산하기에는 무대만큼 좋은 곳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음에도 연극에 대한 갈증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와서는 광주시립극단에서 잠시 활동을 하다가, 구 소비에트 연방(소련)과 막 수교가 이루어질 즈음, 러시아로 유학을 떠난다고 할 때는 그저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4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길을 망설임 없이 전진해 왔다. 각 대학에 강의를 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더니 어느 순간 경기도립극단의 무대감독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연기에 대한 열정 때문에 결국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배우로 활동을 하다가 어느 날 불쑥 고향으로 내려 왔다. 거의 20년만의 조우. 물론 불쑥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나를 포함한 몇몇 후배들의 간곡한 권유가 있었다. 그것 때문에 늘 죄송한 마음이다.

그는 주요무형문화재 제34호 <강령탈춤>을 전수 받았으며 전통문화예술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현대극과 전통극을 넘나들며 선 굵은 연기를 선보였다. 마당극에서 그가 보여준 해학과 전통적인 몸놀림은 익살과 능청스러움을 넘나들며 관객들을 웃고 울게 만드는 천부적인 광대의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현대극에서는 묵직한 연기로 관객과 호흡하면서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매력적인 배우이기도 하다.

오래 만에 고향에 내려와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 있는 배우 한중곤.  그는 아직 미혼이다. 연극과 함께한 세월이 오래 되어서 인지, 늘 무대 위에서는 당당하면서도 유독 여자문제만큼은 보수적인 그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넋두리처럼 흘리던 이야기. “연극은 너무 힘들고 배고픈 예술인데, 남의 귀한 집 딸을 데려다가 고생시킬 수는 없잖니! 그러니까 결혼을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다.”라고.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가 얼마나 외로운 사람인지? 얼마나 로맨티스트인지? 얼마나 사랑을 갈망하는지? 그에 비례해서 얼마나 책임감이 강한지? 얼마나 연극을 사랑하는지?

그도 자신을 안다.
연극을 하기위해서 얼마나 많은 길을 포기해야만 했는지를, 그리고 너무 멀리 돌아 왔다는 것을. 하긴 인생의 완성이 결혼은 아니지만 그를 보고 있으면 결혼만이 너무 많이, 너무 멀리 돌아 온 그의 인생을 구원해 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수많은 작품 속에서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고, 언제나 열정적인 자세로 연극의 기본정신을 이야기하며, 누구에게나 자상한 선배로 존경받는 그는 아직 37세의 무대인생밖에 살지 않은 싱싱한 청년이라고. 형님! 공연 끝나고 술 한 잔 하시죠? 제가 많이 사랑하합니다.


■ 수상 경력
1983년 제1회 전국연극제 대통령상(소작지 출연)
1984년 제2회 전남연극제 연기상(황매천)
1991년 광주연극상 수상
1992년 광주연극제 연기상(그 여자 이순례)
2007년 제25회 경기도연극제 최우수연기상(선착장에서)
2007년 성남시장 표창장
2008년 경기모범연극인상
2009년 한국예총 표창장
2011년 제29회 경기도 연극제 최우수연기상(처인성)

■ 연도별 주요 출연작
1980년 임금님 안경은 누가 벗길 것인가?
1983년 소작지
1984년 황매천, 베니스 상인
1985년 김덕령장군
1986년 출세기
1987년 다시라기(독일 칼 수루헤 공연)
1988년 별주부전
1989년 구슬뿌리
1990년 우덜은 하난기라, 결혼, 아벨만의 재판
1991년 정부사, 놀부전, 위기의 여자
1992년 도적들의 무도회, 홍당무, 신 방자전
1993~1996 러시아 유학
1997년 고향의 봄, 난 스타가 될 거야, 신 춘향전
1998년 불의 나라, 한 여름 밤의 꿈, 칼 이야기
1999년 영원한 제국, 별 산대 놀이가 다 있네, 고구려브루스
2000년 수원 알비장
2001년 소피의 선택, 그 여자의 소설
2002년 아름다운 사인,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2005년 하카리, 사랑? 사랑!(원제:루브), 토깽이전, 쥐
2006년 인류최초의 키스, 선착장에서
2007년 선착장에서, 꽃마차는 달려 간다
2008년 피라미들, 심학규전
2009년 소나무아래 잠들다, 영국신사 양기백
2010년 들풀의 힘, 기억 저 편, 철종13년의 셰익스피어
2011년 처인성, 포도밭 넝쿨 사이로, 강빈, 장수의 꿈, 영웅 우투리, 가족 캐린더
2012년 세익스피어 인 광주, 불꽃 남자 이종무, 우리가족의 자화상, 아! 충은 아니로다,
       별주부전, 김치, 언덕을 넘어서 가자
2013년 풍금, 오래전애, 늙은 코미디언 이야기, 오발탄, 놀부가 기가 막혀, 그 여자 사람 잡          네, 학문외과2, 진짜서부극, 오셀로
2014년 오방선생, 1회용가족, 꿈속의 사랑, 나의 살던 고향
2015년 나이테, 늙은 코미다언이야기

■ TV, CF, 영화
1990년~1991년 광주MBC-TV [젊음을 가득히]
1996년~1997년 여수KBS-R [지팡이 아재]
2007년 MBC-TV [실화극장] 죄와 벌
2012년 예금보험공사(금융이 뭐길래)
2013년 전남대학병원 권역 심뇌혈관질환센터
2014년 도희야(칸영화제 출품작)
2015년 전국공무원노조(공적연금 강화)

 

 무대 위의 인생 /
글쓴이 박규상 / 전) 한국연극협회 광주지회장, 현) 광주공연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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