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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국회의원(한나라당)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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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2000(Korea Journal 21C) 인터넷 신문
이정현 국회의원 인터뷰



대 담 : 최미향 부국장
영 상 : 백성기 부장
사 진 : 유정수 기자















'정치인은 시련과 도전 속에서 만들어진다'..
바로 이 글귀가 이분을 대변해주는 듯 합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묵묵히 한길만을 걸어온 분이죠.
KJ2000인터넷신문, 오늘은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과 함께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Q. 먼저 의원님의 학창시절 이야기부터 나눠 보겠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의원님은 어떤 학생이었습니까?


A : 거슬러 올라가서 초등학교 때부터 모범생이었습니다. 저는 그야말로 두메산골 초등학교 한반 졸업을 했습니다. 산골 소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겪었습니다. 그것은 저로 하여금 국회의원이 된 후에 가장 인간적인, 불평스럽고 어려운 서민들을 체험할 수 있었던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Q. 언론을 통해서 초등학교시절 故 박정희 전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어떤 내용이 담긴 편지기에 청와대비서실에서 직접 전화가 오고 교장선생님이 집까지 방문하게 됐나요?

A : 상당히 무모했던 거죠. 제가 초등학교 3학년때 국회의원선거 합동연설회를 가서 보고 문화적인 충격을 느꼈었던 것 같습니다. 시골에서 거의 보기 힘들었던 JEEP차가 열서너대씩 들이닥치고 양복 입은 사람들 등 많은 사람들을 보는 것도 놀랐지만 특히 그 사람들이 연설대에 올라와서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면 지역에 전기가 들어오게 하겠다! 또 보성강에 다리를 놓겠다! 비포장도로를 포장하겠다! 하는 등등 사실 지역민으로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편들을 모두 해결해주겠다고 하는 그런 연설들, 그것도 정말 멋지게 보이는 사람들이 힘있게 하는 연설들을 보고 제가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틈만나면 전기전집을 주로 읽고 특히 정치인 전기전집을 많이 읽고 정말 드물게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다 보니까 잡지 두권을 구독해봤습니다. 어깨동무와 어린이자유 라는 그리고 소년한국 이라는 신문을 구독했었습니다. 거기서 대통령이라는 분이 어떤 활동을 하고 또 어린이들에게 어떤 관심을 가져주는 대목들을 읽었습니다. 어느날 제 가슴속에서 대통령께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들어 그냥 서울 종로구 청와대 박정희대통령 귀하라고 편지를 보내고 저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습니다. 편지내용은 시골 우리학교와 시골생활에 대한 소개를 했었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지역이 제가 신문이나 잡지에서 봤던 것처럼 편리한 그런 고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담아서 보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비서실에서 교육청으로 연락이 왔고 교장선생님이 교육장 선생님께 불려가서 그 내용을 전해 듣고 그렇게 해서 한바탕 소동 아닌 소동이 있었습니다.

Q. 어떻게 보면 박근혜 전 대표와의 인연이 여기서부터 시작된게
아닐까싶습니다! 박근혜 전대표와의 직접적인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요?


A: 저는 1984년도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들어갔었는데 2004년도에 탄핵역풍, 그리고 차떼기로 한나라당이 거의 벼랑 끝에 있고 한나라당이 국민들로부터 많은 지탄과 욕을 먹고 있었는데 제가 유일하게 한나라당에 명맥을 이어야 된다는 심정으로 광주에서 혼자 출마를 한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대표였던 박근혜대표가 저에게 격려전화를 주셨고 그리고 밥을 한번 사겠다 라는 약속을 선거 끝난지 한달 후에 지켰습니다. 그리고 밥 먹는 자리에서 제가 박대표에게 “이제 한나라당이 호남을 포기하는 전략을 포기하여 주십시오” 라는 제 나름대로의 논리를 대략 15분간 펼쳤습니다. 근데 박대표는 의외로 제게 어쩌면 그렇게 말씀을 잘하세요! 라고 하면서 저를 3일 뒤에 수석부대변인으로 발탁해주셨고 그리고 대선경선에 나오면서 캠프에 공동대변인으로 발탁했고 지난 18대 총선때는 자기 몫으로 한명 주어진 비례대표를 저를 지명하셔서 제가 국회에 진출하는데 이르렀습니다.

Q. 현재 의원님은 박근혜 전 대표의 입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A: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죠. 박대표가 대선의 조기 붐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캠프를 공식적으로 차리지 않았고 따라서 공식적인 대변인 역할을 하지 않고 사실상 대변인 역을 하는 것이죠!

Q.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있는데요.
정치인이 아닌 박근혜 전 대표의 인간적인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사실은 인간적인 매력이 정치인 못지않게 많은 분입니다. 그분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박근혜공주다 편하게 살았다 호의호식했다” 이런 비난들에 대해서 이번 강명수 사건 훨씬 이전에 만일 자기가 살아온 삶을 모두 얘기 해주고 이러고도 대통령 딸로 살고 싶냐 라고 물으면 그렇게 살겠다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또 차라리 내가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사람으로서 겪을 수 없는 극한적인 개인적인 아픔을 겪은 사람 입에서 나온 얘기겠습니까! 한번은 자기가 정치를 하기 전에 친지들이랑 같이 드라마를 보는데 주변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더라는 거예요. 근데 자기는 속으로 생각했답니다. 저 정도를 가지고 눈물이 나오나 또 박 대표를 모시고 다니다 보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이 생깁니다. 그런데 박대표는 울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박대표님께 기자들이 대표님 우는 사진한번 찍고 싶은데 울지않아서 조금 불만입니다. 그랬더니 박대표님은 ‘농담이지만 저는 흘릴 눈물이 없나 봐요.’ 말씀하셨는데, 저는 집이 없거나 직장이 없거나 월급을 적게 받는 사람이 서민이 아니라고 봅니다. 정말 인간으로서 가장 한계점에 이를 수 있는 아픔을 겪어 본 사람 그래서 남의 아픔을 충분히 헤아리고 알 수 있는 사람 저는 그런 사람이 진정으로 서민의 편이고 또 서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박 대표는 가장 서민적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박대표는 함께 있으면 끊임없이 주변을 웃깁니다. 그렇게 유머감각이 풍부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주 따뜻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데 대해서 놀랬고 그러나 약속을 지키는 신뢰, 국가 와 국민에 대한 사랑, 이런 부분이 정치적이 아닌 일상에서도 항상 묻어 있기 때문에 그 분에게 있어서 사실상 국가나 국민을 떼어놓고 다른 것에 대해 얘기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Q. 직접적인 질문이 되겠네요..
‘박근혜 대세론’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저희들은 지지율이 높거나 낮은 것은 국민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이 어찌할 수 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지율이 낮다고 해서 억지로 끌어 올리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지지율이 높다고 해서 기고만장하거나 교만하지 않습니다. 그저 지지율은 그때 그 순간에 국민들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참고로 할 뿐입니다. 다만 우리는 국가나 국민에 대한 박대표의 철학, 노선, 일관된 입장 그런 부분들이 국민들에게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지지율이 나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고 결코 그것이 대세라든가 또는 지지율이 높기 때문에 그것에 맞춰서 우리의 행보를 바꾼다든지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가 준비한 프로그램대로 차근차근 해 나갈 겁니다.

Q. 호남출신 정치인으로서 의원님에게 한나라당이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A. 저는 호남출신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서 제 자신을 보배라고 생각합니다. 호남에서 한나라당을 아무리 배척해도 대한민국에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양대 정당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정당 중에 어느 당은 집권을 하고 정부 정책을 이반을 하고 예산을 편성하고 그에 대한 집행권한을 갖게 됩니다. 호남에서 민주당을 일방적으로 지지했을 때 한나라당이 집권한 후에 호남에 각종 정치 현안에 대해서 누구를 통해서 어떤 식으로 호소할 겁니까. 한나라당 당정회의에 민주당이 들어올 수 있습니까! 그러면 호남의 시급한 당면 현황들을 집권여당과 집권세력들에게 누가 가서 호소하고 설명할겁니까? 저는 무려 26년 만에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어느 순간에 제가 호남출신으로서 한나라당 인맥을 저만큼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또 제가 한나라당내에서 전략기획단장, 정세분석단장, 정책기획단장, 미디어기획단장, 여의도 연구소 기획팀장, 자료분석팀장등 상당한 주요직들에서 일하면서 ‘저만큼 호남출신으로 한나라당의 메커니즘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라고 생각하며 저에게 힘이 주어진다면 ‘저만큼 호남을 위해서 한나라당내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제가 참을 수 있었던 것은 ‘호남의 보배가 이렇게 가볍게 움직이면 안 된다’ 라는 생각으로 참았고 국회의원 3년 동안에 그토록 고향인 호남사람들로부터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았지만 아직은 ‘백조새끼라는 것을 입증하는데 많은 노력을 했다’ 라고 확신합니다.

Q. 의원님이 정치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떤 부분에서 입니까?

A.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초등학교 3학년 때 정치에 대한 꿈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단한번의 변함없이 오늘까지 왔고 그리고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광주에서 두 번 출마했는데 한번은 0.7%를 얻은 적도 있습니다. 고향으로부터 외면 받았지만 어쨌든 제 방식을 가지고 한나라당에서 비례대표가 됐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정치를 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은 제가 비주류생활 어렵고 힘든 서민생활을 많이 했기 때문에 적어도 그분들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분들의 입장에서 대변하는 것 그분들의 스피커역할을 하는 것, 대변 그것을 확실하게 하고 싶고 또,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시점부터 시작한 제가 제 눈에 비친 국가권력이나 정부권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끊임없이 해서 여론을 환기시키는 것, 제가 세상을 다 바꿀 수는 없고 해서 제 자신에게 충실하고자 합니다.

Q. 그동안 비주류, 그리고 한나라당 활동을 해오시면서 정치의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고난과 역경이 있었을 텐데 언제가 가장 힘들었는지, 또 그때마다 힘든 상황들을 어떻게 극복해 내셨는지요?

A. 세 가지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때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때 부터 단 하루를 거르지 않고 기도를 해왔습니다. 그 기도의 힘이 저로 하여금 흔들리지 않게 하고 고난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했던 것이 저에게는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항상 기도를 통해서 바른길, 어려운 사람들의 편에 서야한다는 다짐을 하게 해 왔었던 것이 가장 컸다고 봅니다. 저는 국회의원이 되겠다가 꿈이 아니었습니다. 국회의원이 되면 무엇을 하겠다를 항상 생각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을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너무 힘들고 오히려 그게 당하고 있는 고통보다 그 무엇을 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이 더 고통스러울 것 같아서 항상 내가 하고자 했던 일들을 구상하고 목표를 세웠던 점이 저로 하여금 고난을 이겨내게 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역시 가족입니다. 제 부모님, 형제들, 저를 가장 신뢰한 사람들에게 내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분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가족애가 힘들고 어려웠을 때 정말 그만두고 싶었던 일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앞서 말한 세가지를 잃는 것이 더 큰 고통일 것 같아서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Q. 비주류로 활동 하시면서 힘든 상황도 있었지만 반면 재미난 에피소드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혹 기억나는 사연은?

A. 많죠. 저는 한나라당의 주요직을 맡아오며 다른 사람보다 세네배의 일을 해왔을 뿐입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저는 정치정세분석이나 전략을 짜기 위해서 저는 한 신문을 네 번을 읽었습니다. 여덟 개 신문의 가판을 밤늦게까지 읽고 다음날 본판과 가판의 차이점을 찾아내서 읽고 토요일엔 기억해두어야 될 많은 기사내용들을 수기로 기록하고 일요일에는 타이핑을 하면서 차곡차곡 챙겨두었습니다. 그래서 회의가 시작되면 어떤 사안이 되었든 역사, 정치적인 것은 반복입니다. 과거에는 어떻게 대처를 했고 어떤 성공과 실패가 있었는지를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회의를 주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근데 회의를 주도하는 것 조차도 호남출신으로 너무 지나치게 하면 미움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말하지 않으려다가도 답답한 나머지 이야길 하게 되고 그런 식이어서 사실상 인정을 받았던 것이 기억에 남고 가장 보람된 것은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입니다. 호남에서 올라온 많은 민원들에 대해서 국회의원으로서 자존심을 모두 팽개치고 시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민원들이 하나하나 해결되어서 지역민들의 이득으로 돌아갈 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기쁨과 희락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겁니다. 제방에 찾아온 진도 부군수가 진돗개 사육센터를 지어달라고 했을 때 제가 물었습니다. 부군수님 민주당 군수님을 모시고 있는 분이 한나라당 사무실까지 오셨는데 혹시 발이 부르텄을 수 있으니 신발 좀 벗어보시죠 라고 농담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호남지역의 많은 분들의 감사 편지, 이메일, 전화를 받으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Q.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이 진정으로 국민정당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제가 우선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박근혜대표가 생각하는 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지난 60여년 동안 헌정이래로 참으로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 그래서 건국도 했고 자유민주주의도 지켜냈고 경제성장도 했고 민주화도 일으켰고 남북간의 화해도 진전을 시켰고 대통령과 국가권력기관의 권위주의도 많이 타파가 되어가며 많은 진전이 있어왔습니다. 2차대전 이후 대략 82개의 신생독립국가가 생겼는데 그 국가들 중에서 경제 12대 강국으로 풍요를 이룬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경제성장하는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부분들을 정상화하는 게 절대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중에 첫째가 신뢰입니다. 대통령, 국가기관, 정치인부터 그리고 사회기업인들부터 신뢰를 절대 중시하는 사회를 구축해나가기 위해서는 법과 원칙을 지켰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시스템입니다. 제대로 짜여진 시스템으로 국정운영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호남지역의 인사문제에 있어서 학연지연을 따지는 것은 죄악이라 생각이 듭니다. 인사권자의 연고주의에 의해 많이 노력한 사람들에 대한 인재낭비입니다.

Q. 이제 가족이야기를 여쭤보겠습니다.
고향이 곡성이신데 부모님은 아직도 고향에 계십니까?


A. 부모님께서 고향에 생존해 계십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부모님과 통화를 합니다. 국회의원으로서 바쁜 일상에서도 곡성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떨립니다. 목사동 동암리 관암촌이라는 마을입니다. 제 고향 이야기를 듣게 되면 뭉클합니다. 뒷산에 커다란 황새바위가 있고 저희 고향집 마당이 마을의 한가운데입니다. 그리고 금산이라 불리는 커다란 산이 있습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지금까지도 집에 있을때면 마당에서 그 산과 대화를 합니다. 저 산처럼 무게 있고 깊이 제 중심을 지키겠노라고 산과 대화를 합니다. 지난 명절에도 산을 바라보며 다짐을 했었습니다. 고향은 모든 것이 추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릴적 고향들녘을 뛰어다니며 다진 체력이 지금의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Q.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는 어떤 분이세요?

A. 저는 아버지를 페스탈로찌라고 표현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정말 존경합니다. 제가 6세때 한글을 깨우쳤고 7세에 저에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쓰도록 하셨습니다. 그게 저에게는 문장력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부터 국어책을 크게 읽는 습관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남자는 사람들 앞에서 또렷하고 분명한 발음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길을 갈 때엔 항상 가운데를 걸어가고 팔을 양쪽으로 힘차게 흔들며 고개를 앞을 향해 세우고 당당하게 걸어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신문과 잡지를 정기구독하게 해주시고 대학갈 형편이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논 다섯마지기를 팔아 서울 친척에게 맡겨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시기도 하셨습니다. 하루는 담임선생님의 가정 방문때 “저는 애들이 돈을 알게 되면 큰 뜻을 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빚 이야기를 할 때는 애들을 밖으로 내보냅니다.” 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절대적입니다. 제가 박근혜대표 경선이 끝나고 나서 이명박 캠프에서 저를 오라고 하는 시점에서 경기도 정무부지사 제안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어려운 형편에서 저에게는 엄청난 제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박대표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망설임 끝에 거절하였습니다. 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다시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아버지만은 “나는 우리 아들이 경기도 부지사를 지낸 걸로 생각하겠다. 박대표가 너를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도 박대표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 내 아들 잘했다.” 라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더욱 확신을 가지고 박대표의 곁에 남게 되었습니다.

Q.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A. 저는 밖에서는 큰 꿈으로 살고 안에서는 편안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순한 아내를 얻겠노라 생각했고 그 아내를 얻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태어나고 생활이 어렵다 보니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이 야무지게 됐습니다! 어머니 친구가 소개를 해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Q. 이번에 청예단의 청소년지킴이 중앙청년위원장으로 위촉되셨는데요. 청소년 문제에 꾸준한 관심을 갖고 문제해결에 노력해온 결과가
아닌가 싶은데요, 청예단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


A. 저는 정말 폭력을 싫어합니다. 국회의원 되기 전에도 그랬고 국회의원 되고 나서도 서민을 괴롭히는 조직폭력, 그리고 군대에서 정말 국가를 지키겠다고 자식을 맡겼는데 어떻든 관리를 잘못해서 폭력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군대폭력 그리고 가정에서 애들이나 부인들이 당하는 가정폭력,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해야 될 학창시절을 때리고 맞고 평생을 두고 후회할 수밖에 없는 그런 학교폭력, 네가지 폭력에 대해서 저는 앞으로 정치하는 동안 법으로 막고 정책으로 막고 그리고 단속으로 막고 이런 일을 나서고자 합니다.
그런데 제 늦둥이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 밤에 엄청나게 맞고 들어왔어요. 얼굴을 짓이김을 당해서 코뼈가 부러지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많이 맞고 들어왔어요. 그때부터 저는 학교 폭력에 대한 굉장히 강한의지와 반감을 갖게 되었고, 그 부분에 우리 청예단이 정부가 다 할 수 없고 선생님이 다 할 수 없는 것들을 민간인 차원에서 자원봉사단을 총동원해서 상담도 해주고 예방교육도 하는 청예단이 있어서 기꺼이 참여 하게 되었습니다.


Q. 다음총선에서 어디 지역으로 출마하실 생각이십니까?

A. 저는 96년도, 2004년도 누구도 안 된다고 했던 광주에서 한나라당 맥을 분명하게 잇기 위해서 두 번 출마를 했습니다. 물론 미미하다
할 정도로 득표를 했었습니다만 포기 하지 않고 이제 제가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지만 다음번 선거는 광주에서 출마할 생각입니다.
제가 정확히 어디로 출마 하겠다 라고 밝히지 않은 이유는 한나라당이 집권하고 있는 동안에 지금 당내에 호남을 대변할 분들이 없고, 전라북도에서도 전라남도에서도 광주에 구석구석에서도 저에게 많은 예산을 포함한 그런 민원들을 가지고 오시는데 한지역구에 매달리게 되면 그때부터 그 분에게 소홀할까 싶어서 일단 올해 6월달 이후로 지역을 계획하고 있고, 발표를 할 생각입니다. 다음번 총선 때 광주로 출마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Q. 끝으로 의정활동에 대한 각오와 함께
국민들에게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요?


A. 의정활동 부분은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만 남은 1년도 저는 세가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결위원과 법사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법사위원으로써는 검찰이나 법원에서 판결사건을 가지고 문제를 다루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법보호 국민들이 법에 보호를 받는데 실질적으로 제도를 내놓고 지키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국민들이 법에 제대로 보호를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하는 부분에서 늘 감사에 초점을 맞추고 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서민들이 법에 보호를 받게하는데 중점을 둘 생각이고 개인적으로 문화산업에 굉장히 관심이 많습니다. ‘대한민국이 이제 문화로 먹고사는 시대가 되어야된다’ 생각하고 특히 우리 광주 같은 경우는 문화중심도시로 일찍 선포를 한 것이 다행스럽고 선도적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화예술분야에 적극 지원할 생각입니다. 그런 한편으로는 국가가 정말 바로 서야 한다고 봅니다. 신뢰의 사회, 법치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는 국가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을하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국가의 지도자를 내세워야 되고 그런 지도자가 제가 될 수 없다면 더 거기에 가까운 그런 인물을 만드는데 앞장을 설 생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어려서부터 실질적으로 정치를 하고 싶었었던 꿈을 갖게했던 우리 호남에 여러가지 문제점들, 특히 탕평인사 부분에서는 온 몸을 던질 생각입니다.


‘실패한 사람을 위로하는 정치를 하겠습니다.’라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올곧은 소신을 따라 많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인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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